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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즈마켓의 시작

촉망받던 사회 초년생 시절

1989년, 대학교 졸업 후 대기업에서 탁월한 영업실적을 올리던 젊은 나는 세상을 품을 각오로 과감히 퇴사, 사회로 뛰어든다.

과일 행상부터 악세사리 노점까지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시작할 첫 사업은 패기와 열정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리라 믿었던 그,
퇴직금을 탈탈 털어 장만한 중고 트럭 한 대로 과일 행상을 시작했지만 처참히 실패
네 평짜리 슈퍼를 열었지만 가게는 하루 매상을 채우기도 벅찼다. 실패
김밥을 말아 대학교에 납품했지만 "우엉 넣어라", "맛살 넣어라" 요구 사항에 맞추다보니 김밥 한 줄 팔아 남는 돈은 단 70원 실패
악세서리 노점을 운영했지만 하루 종일 1,000개 납땜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었다. 또 실패

하루 아침에 밑바닥...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중고로 구매한 오븐 하나로 빵집을 차렸다.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행복을 만끽했다.
딱 1년 2개월 동안은...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모든 게 무너졌다. 대출금과 이자, 인건비에 퇴직금, 빚 독촉은 정말 질겼다.
창 밖에서 발걸음 소리만 들려도 불을 끄고 아들 둘을 끌어안은 채 숨 죽였다. 하루에 열 두번 ‘죽어야지’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 속에 젖어있을 때 그는 한강 다리에 섰다.
희안하게도 삶의 끝에 서니 오기가 생겼다. '에이 씨 갈 곳 없는 인생 막장, 죽을 때 죽더라도 비싼 것 좀 팔아보고 죽자'
빵집 할 때 사용하던 중고 오븐을 활용해 ‘프리미엄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아보기로 했다.제일 궁핍하던 시기에
‘프리미엄’ 전략이 떠올랐으니 아이러니 했다. 서울 시내 200군데를 돌며 샌드위치를 맛 봤다. 그러기를 석 달,
샌드위치가 입에서 살살 녹는 듯 맛이 기가 막힌 빵집을 찾았다. 그것을 만든 달인을 찾아 며칠 간 읍소하고.. 부탁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명인이 되기까지

달인에게 기술을 전수받아 김밥 납품 때 연을 맺은 담당자께 연락해, 대학교 구내 식당에 찾아갔다.
당시 구내 식당 밥값은 1,400원, 내가 만든 샌드위치는 2,500원이었다.담당자는 ‘또 망하려고 작정했소?’라고 핀잔을 줬다.
판매대에 30개만 올려달라고 사정했다. “자네도 자식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딱 해서 올려두기는 하겠네만.’ 그는 혀를 끌끌 찼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정 사장 미안한데 샌드위치가 없어서 못 팔아. 100개만 만들어서 얼른 갖다 줘.’
점점 판매량이 늘어 100개가 1,000개가 되고 10,000개가 됐다. 지금은 수 없이 많은 업장에 ‘정주백표 샌드위치’를 납품한다.
나는 네 번의 실패를 통해 네 번의 인생을 배웠다. 태풍과 천둥을 끌어안고 살아온 처절한 실패담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부끄럽기도했다. 하지만 창업에 실패해 좌절하고 쓰러진 누군가가,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내 모습을 보고 부디 힘을 냈으면 좋겠다. 내일은 알 수 없기에 여전히 불안하지만 모든 과정에서 진정으로 부딪히고,
깨닫는다면 그 모든 실패야 말로 진짜 인생을 퍼내는 마중물일지도 모른다.

수년 간 준비해온 샌디즈마켓으로 승부를..

입소문이 무섭다. 대기업 납품과 유명 프랜차이즈에 ‘정주백표 샌드위치’가 판매되면서 나의 제품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하지만 상황이 맞질 않아 진행하지 못했다. 이젠 나의 제품을 원하는 이들에게 모두 보여주고 싶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샌디즈마켓을 ‘안전한 먹거리, 정성스러운 먹거리’로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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